우선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불우했던 유년 시절 일요일마다 과자를 먹기 위해 잠시 다녔을 뿐인 무신론자입니다.
성경과 신은 먼 옛날 어떤 사람이 잘 지어낸 소설에 불과하다 생각하므로 두 손 모아 무형의 대상에게 기도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품곤 했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하늘을 찢는 듯한 천둥번개, 혹은 큰소리로 짖는 사나운 개 등의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 부모의 품으로 달려가 안겨 두려움을 해소하곤 합니다. 이는 누군가에게 교육 된 것이 아닌 인간의 본능입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 자신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안식처를 부모님의 품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듯 어린아이는 두려움에 대해 솔직하여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두려움을 이길 수단을 찾아냅니다.(어머니의 품, 이불 속등)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원초적인 공포에 대한 두려움보단 그 외의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경제적문제, 건강, 미래의 대한 불안감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오는 두려움을 흔히 우리는 스트레스라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스트레스가 아닌  '스트레스 유발 인자'로써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제 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들며 스트레스를 치유하려 합니다. 이는 문제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행위입니다.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면
인간은 두뇌의 편도체로부터 신호를 받아 신체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는 야생에서 사자나 독사등의 위험한 것들을 마주했을 때의 생존을 위한 반응과 같은 것입니다.
그 반응으로는 신체가 민첩해지고 두뇌가 예리해지고 인지 처리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리고 생각은 방황을 멈추고 우선순위가 아닌 것을 버리며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스트레스라는 것은 '두려움'이고
 생존을 위한 자연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서울 때 부모의 품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두려움을 이겨낼 건강한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다시 종교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제가 무신론자인 것엔 변함이 없으나
종교, 기도, 신에게 의지하는 것에 대해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얘기하고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지인이 주변에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런 사람이 없을 때 혼자서 앓기보단 신이라는 존재에게 모든걸 털어놓으며 기도를 하고 위안을 받는건 상당한 도움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믿고 신에게 자꾸 기도하다보면 기도는 더이상 무미건조한 되풀이가 아닌 간절한 울림이 있는 도움 요청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정확히 알게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원동력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께 도움을 받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느낄 때 혼자 해결하려하기 보단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그 대상이 마땅하지 않을 때 종교라는 훌룡한 의지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개독교란 말이 생길 정도로 일부 교회의 부패가 심각하지만 종교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건전하게 이용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존을 위한 우리 몸의 반응을 스트레스라 정의하여 우울, 분노, 약물의존 등으로 해결하려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두려워 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건강한 방법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 됩니다.

 


저는 저의 여러가지 스트레스 요소들을
제가 두려워하는 것으로 인정했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찾기위해 노력하며
우울증과 알콜중독이 상당히 개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트레스란 단어를 두려움으로 바꿨을 뿐인데 나타나는 긍정적 변화를 여러분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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