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천문학의 역사와 동양의 천문학
깐나미
2019. 3. 28. 02:53
안녕하세요 깐나미입니다!
동양의 천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흔히 천문학의 역사를 말할 때
자연 과학 중에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왜냐하면 천문학이란 고대에 생존과 직결된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야 문명의 천문대,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 신석기 무덤, 한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 돌지도 등 고대 천문학은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천제 운동의 규칙성을 알아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이용해 시간을 정의할 수 있고 역법을 만들어 농사와 수렵,겨울 대비 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일식, 월식 같이 천문 현상들을 가지고 각종 의식들을 행할 수 있었으니말입니다.
죽은자를 위한 성역 스톤헨지도 거대한 달력이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 보스턴 대학의 제널드 홉킨스 교수 등이
이 학설을 더 발전시켜 스톤헨지의 구조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천체의 움직임이 밀접하게 연관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도 더 된 옛날의 일들이지만 이 일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있습니다. 정교한 달력은 이후에 완성되었지만 달력도 고대 천문학이 틀을 잡아놓은 것이고, 신문에 있는 오늘의 운세도 고대 천문학의 산물입니다.
별자리들도 메소포타미아의 목동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전해져내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하던 천문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를 전후로 동양과 서양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에선 적어도 청동기 시대 때부터 별을 관측했습니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 모양의 구멍들이나 고분들의 벽화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남 의령군의 고인돌이나 평남 증산군 고인돌 등으로 봤을 때 기원전 2천 5백년 경에서부터 이런 흔적들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청동기시대다보니 문헌적인 기록은 전무한 상태여서 현재로써는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연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 이전에 3원 28수 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십팔수에 대한 묘사는 사기나 고구려 고분에서도 나타납니다. 진파리 4호 무덤과 덕화리 2호 무덤에 28수가 그려져 있습니다.
동양의 대표적 천문관인 혼천설과 개천설도 중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개천설은 주나라, 혼천설은 후한 때에 등장하였습니다.
동양에서 사용하던 역법도 중국의 것이 절대적이었는데 상나라의 원시적인 태음태양력에서 시작하여 전욱력(진), 태초력(한), 의봉력(당), 수시력(원), 대통력(명) 등으로 발전했습니다.
동양 최고의 석각천문도도 중국에 있습니다. 1247년에 제작된 소주천문도로 한국의 천상열차분야지도보다 약 150년 쯤 빠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거의 기원 원년 경의 일식 현상도 기록하고 있고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일본에 역박사와 천문박사를 보냈다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으로 천문학이 발달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천문학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제의 원가력이나 신라의 의봉력 같은 역법 등을 얻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학자들이 일본으로 일부 망명하면서 체계를 갖추고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키토라 고분의 성도는 고구려의 성도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7세기 즈음부터는 일식과 월식 같은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관측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이후 전국 시대 등의 혼란기를 거치며 일본의 천문학은 정체기에 접어듭니다.
고려시대 천문학은 고려사나 각종 고분들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서운관이라고 천문 관련 관청을 따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일식, 월식, 유성, 유성우는 물론이고 태양 흑점 변화, 변광성, 심지어는 오로라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이때 나온 책이 칠정산과 천문유초입니다. 또한 조선 시기에도 과거 제도에서 음양과를 통해 천문학 관련 기술관을 뽑았을 정도로 천문학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문물들과의 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종 때 만들어진 혼천시계나 영조 때 만들어진 황도남북양총성도가 대표적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김영은 서양의 역법을 도입해 신법중성기를, 조선의 역법을 정리해 국조역상고를 썼습니다.
그리고 실학이 발전하면서 조선의 천문학도 발전을 이뤘습니다. 천리경 같은 기구들도 들어오며 실학자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김석문과 홍대용 등은 지구가 회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장합니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 일본의 천문학은 다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시부카와 하루미는 일본 고유 역법인 정향력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혼천의, 지구의, 천체 망원경 등을 제작했습니다. 특히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천문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국가에서 기초 과학에 워낙 넉넉한 지원을 해줘서 그런지 20세기 초부터 걸출한 천문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하야시 경로를 발견한 쓰시로 하야시가 등장한 것도 이 즈음입니다.
이 시기를 거쳐 현재 일본의 천문학은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고, JAXA(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를 중심으로 천문학과
우주개발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1948년도에 서울대학교 천문기상학과가 개설되며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었고, 1967년도에는 연세대에 천문기상학과, 1985년에 경희대에 우주과학과, 이후 80년대 후반에는 충남대, 충북대 등에서 천문 관련 학과를 개설하였습니다.
1965년에는 한국천문학회, 1974년에는 국립천문대(후일 한국천문연구원)가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KVN(한국우주전파관측망)이나 GMT(거대마젤란망원경)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천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흔히 천문학의 역사를 말할 때
자연 과학 중에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왜냐하면 천문학이란 고대에 생존과 직결된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야 문명의 천문대,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 신석기 무덤, 한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 돌지도 등 고대 천문학은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천제 운동의 규칙성을 알아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이용해 시간을 정의할 수 있고 역법을 만들어 농사와 수렵,겨울 대비 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일식, 월식 같이 천문 현상들을 가지고 각종 의식들을 행할 수 있었으니말입니다.
죽은자를 위한 성역 스톤헨지도 거대한 달력이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 보스턴 대학의 제널드 홉킨스 교수 등이
이 학설을 더 발전시켜 스톤헨지의 구조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천체의 움직임이 밀접하게 연관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도 더 된 옛날의 일들이지만 이 일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있습니다. 정교한 달력은 이후에 완성되었지만 달력도 고대 천문학이 틀을 잡아놓은 것이고, 신문에 있는 오늘의 운세도 고대 천문학의 산물입니다.
별자리들도 메소포타미아의 목동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전해져내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하던 천문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를 전후로 동양과 서양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에선 적어도 청동기 시대 때부터 별을 관측했습니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 모양의 구멍들이나 고분들의 벽화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남 의령군의 고인돌이나 평남 증산군 고인돌 등으로 봤을 때 기원전 2천 5백년 경에서부터 이런 흔적들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청동기시대다보니 문헌적인 기록은 전무한 상태여서 현재로써는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연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 이전에 3원 28수 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십팔수에 대한 묘사는 사기나 고구려 고분에서도 나타납니다. 진파리 4호 무덤과 덕화리 2호 무덤에 28수가 그려져 있습니다.
동양의 대표적 천문관인 혼천설과 개천설도 중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개천설은 주나라, 혼천설은 후한 때에 등장하였습니다.
동양에서 사용하던 역법도 중국의 것이 절대적이었는데 상나라의 원시적인 태음태양력에서 시작하여 전욱력(진), 태초력(한), 의봉력(당), 수시력(원), 대통력(명) 등으로 발전했습니다.
동양 최고의 석각천문도도 중국에 있습니다. 1247년에 제작된 소주천문도로 한국의 천상열차분야지도보다 약 150년 쯤 빠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거의 기원 원년 경의 일식 현상도 기록하고 있고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일본에 역박사와 천문박사를 보냈다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으로 천문학이 발달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천문학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제의 원가력이나 신라의 의봉력 같은 역법 등을 얻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학자들이 일본으로 일부 망명하면서 체계를 갖추고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키토라 고분의 성도는 고구려의 성도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7세기 즈음부터는 일식과 월식 같은 현상들을 체계적으로 관측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이후 전국 시대 등의 혼란기를 거치며 일본의 천문학은 정체기에 접어듭니다.
고려시대 천문학은 고려사나 각종 고분들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서운관이라고 천문 관련 관청을 따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일식, 월식, 유성, 유성우는 물론이고 태양 흑점 변화, 변광성, 심지어는 오로라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이때 나온 책이 칠정산과 천문유초입니다. 또한 조선 시기에도 과거 제도에서 음양과를 통해 천문학 관련 기술관을 뽑았을 정도로 천문학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문물들과의 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종 때 만들어진 혼천시계나 영조 때 만들어진 황도남북양총성도가 대표적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김영은 서양의 역법을 도입해 신법중성기를, 조선의 역법을 정리해 국조역상고를 썼습니다.
그리고 실학이 발전하면서 조선의 천문학도 발전을 이뤘습니다. 천리경 같은 기구들도 들어오며 실학자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김석문과 홍대용 등은 지구가 회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장합니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 일본의 천문학은 다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시부카와 하루미는 일본 고유 역법인 정향력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혼천의, 지구의, 천체 망원경 등을 제작했습니다. 특히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천문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국가에서 기초 과학에 워낙 넉넉한 지원을 해줘서 그런지 20세기 초부터 걸출한 천문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하야시 경로를 발견한 쓰시로 하야시가 등장한 것도 이 즈음입니다.
이 시기를 거쳐 현재 일본의 천문학은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고, JAXA(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를 중심으로 천문학과
우주개발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1948년도에 서울대학교 천문기상학과가 개설되며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었고, 1967년도에는 연세대에 천문기상학과, 1985년에 경희대에 우주과학과, 이후 80년대 후반에는 충남대, 충북대 등에서 천문 관련 학과를 개설하였습니다.
1965년에는 한국천문학회, 1974년에는 국립천문대(후일 한국천문연구원)가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KVN(한국우주전파관측망)이나 GMT(거대마젤란망원경)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